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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레이드 오늘의 일기] 일 잘해서 혼나니까 더 억울하다.

하루일기/애들레이드2020

by 인여인간 2020. 8. 2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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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금요일.

쉬프트상에는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로 되어있었는데,

갑자기 12시가 되니까 모두가 퇴근을 한다.

금요일은 원래 단축근무라고 한다.

평소에 8시간 30분 (무급 휴식시간 30분) 근무를 해서 4일 하면 32시간이고,

요일은 6시부터 12시까지 (무급 휴식시간 30분)을 더해서 총일주일에 37.5시간을  맞추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캐주얼이고 이번 주가 일하는 첫 주라서 아직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저렇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그것보다도, 평소(월화수목)에는 사람들과 기계가 동시에 팩킹을 진행했는데,

오늘은 아침에 출근하니 사람이 서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도 서지 않고 모두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발견한 사람들은 모두 클리닝 섹션에 있었는데,

이유인즉슨 금요일은 이 넓고 넓은 공장의 기계들을 모두 대청소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클리닝잡을 하고 싶진 않은데,

생산기계 관리자들을 제외한 모든 직원들이 총동원돼서 청소를 하는 것이기도 하고,

나는 그냥 공장 직원이기 때문에 좋다 싫다 이야기할 권리가 없다.

 

레스토랑 일할때도 대청소하는 날을 별로 안 좋아했다.

나는 짧은 시간에 급작스럽게 체력을 극도로 소모하는 활동이 잘 안 맞나 보다.

단거리 달리기보다도, 중거리나 마라톤이 좋은 것처럼..

 

 

아무튼 풀타임 워커들 사이에서 기계 대청소를 하는데,

청소를 슈퍼바이징 하는 할주머니 담당자가 나한테 와서 화를 냈다.

 

 제목에 적어놓은 이유로.. 내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대청소하는 날에는 공장 기계를 다 분해해서 청소와 살균을 다 하고 다시 조립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나는 살균이 다 끝난 기계를 다른 담당자에게 물어보고 조립을 시작했고, 조립도 어느 정도 진행을 했다.

기계 조립은 어느정도 기계 눈치, 조립 눈치가 있으면 홀에 맞게 끼면서 한층 한층을 완료하는 그런 간단한 작업인데,

슈퍼바이저가 갑자기 나에게 오더니 "네가 너무 빨리 진행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기계 조립에 대해서 새로이 배울 기회를 빼았았고, 그 책임은 나중에 다 자기에게 돌아오게 된다"라는 이유로 혼을 냈다.

 

맨첨에 나는 '나 일 잘한다고 칭찬하는 걸 돌려서 이야기 하나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말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 다른 담당자에게 확인을 받고 일을 시작했고, 심지어 틀리게 진행하지도 않고 다 맞게 진행했는데 빠르다고 욕먹었다.

빠르고 못해서 욕먹은 게 아니라 빠르고 잘하기까지 했는데 풀타임도 조립할 줄 모르는 새 기계라서 혼났다.

나에게는 공장에 있는 모든 기계가 새 기계인데.... 다른 담당자가 와서 릴랙스 하고 천천히 하자고 토닥였다. 서두르지 말라고.. 이 기계 청소 끝나면 할 일이 없다고.... 오늘 12시까지 해야 하는데 이거 끝나면 할 것 없다며.. 

 

 

그제야 이해가 갔다.

 

내가 혼난 이유는 단순 빨라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공장은 정확한 시간에 시작해서 정확한 시간에 교대를 한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고, 시간도 정해져 있으니 풀타임인 사람들은 그냥 안정적으로 그 시간만 채우면 되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여행사에서 일할 때는 일을 빠르게 처리하지 않으면 야근이었고,

셰프로 일할때는 빠르게 처리하지 않으면 컴플레인이었다. 

한국인의 마인드와 내가 했던 일들이 잘 맞물려서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느릿느릿 농땡이 피우는 직원들 탐탁지 않아하던 나였는데, 이 공장에서는 그냥 정해진 할당량만 채우고 시간만 때우면 되는 것이었다.

 

아까 나를 비난하던 할 주머니 직원은 퇴근하기 전까지 닦은 곳을 닦고 또 닦았다.

이미 완료된 일을 계속 계속하다가 12시가 되기 직전에 사라졌다. 

 

호주의 모든 일자리가 이렇다는 건 아니다.

 

주방에서는 절대 용납 못할 일이지만, 공장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작은 공장도 아니고 큰 공장에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해진 시간안에 최대한의 성과를 내기보다는 안정적으로 내 자리를 부지하는 것도 삶의 지혜다. 하지만 적어도 내 성향은 그렇지 않다.  충분히 해낼 수 있는데 더 큰 성과를 내기를 거부하면서 살아가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는 나는 정말 공무원과는 안 맞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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